Install the XPlant app
Install the XPlant app
Install the XPlant app
Scan the QR code with your camera
Login Join Orders Call center
korean
korean
English
Russian
Chinese
Japanese
Address of Destination
Address of Destination
도매
도매
 MY
MY
Community
Community
Messages
Messages
Coupon
Coupon
Cart
Cart
new_top_category_icon
Succulents Foliage Flower Orchid Seedlings / seeds Pots Garden materials Agricultural products Auction Variegated 무늬식물 same day delivery same day delivery  Design plant Design plant Vivid Shopping Vivid Shopping Store
Store
close
   

Cart

Recently viewed items
There are no recently viewed products
Register store
Home 분재 키우기

분재의 역사

  분재의 역사

Share on social media

글쓴이 : 호요
13-10-11 12:59 2638 0

본문

▣ 분재의 역사
분재의 역사ㅇ자연의 아름다움을 친근히 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사람의 마음이 드디어는 자연과 공존하는 경지에 이르른 것 같다.

ㅇ자연의 풍경을 가까이 접하고자하는 마음은 태초 부터 녹색의 푸르름을 접하며 살아온 것이므로 ...

ㅇ자연에 대한 친근감과 꽃을 그리워 하는 것은
사람의 몸과 마음에 깊이 베어있는 것 같다.

ㅇ창작하는 감각이 뛰어난 종합 예술적인 조화가 이루어져 가꾸기로 표현한 것 같다.

ㅇ분재를 하겠다는 마음을 실천함으로써 자연의 일부인 심산유곡과 노거수의 축경을 각박한 현대 생활 속에서도 곁에 두고 가꿀수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ㅇ자연에 순응하며 그와 더불어 살려고 하는 생활 철학을 가진 동양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며 분재 발원지는 중국에서 부터라고 한다.


분재의 역사


>> 중국의 분재

분재 역사 : 동양 삼국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후한시대 (서기 25년~220년) 무렵 한나라의 무제가 궁궐 안에서 꾸민< 태액지>것이 그 시초라고 한다.



분재의 역사

수목 분재를 들고있는 모습은 서기 600년대 말에 장희태자 이현 <서기 711년에 세상을 떴다고함.> 의 고분에서 시녀가 분재를 들고있는 모습이 발굴 된 으로써 수목 분재로의 역사를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분재를 분경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창시국의 면모를 보일 정도 분재에 관한 오래된 기록이 많이 있다.

그림으로서 당시의 분재 생활을 볼 수 있도록 하였고 저서에서는 가꾸는 방법과 수형론을, 합식, 기식, 석부, 대나무 분재 등을 자세하고 다양하게 저술 하였다.

또한 시로써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를 들어 본다면< 한 그루의 나무를 대하면 산마루의 외딴 소나무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기분에 잠긴다.> 하였고,

< 두 그루의 나무를 보면 마치 깊은 소나무 숲을 대하는 듯 더위를 잊게한다.> 하여 짧은 글로서 분재에 관한 깊은 내용을 담았으며 그림과 도자기등 기록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분재의 높이는 1자 정도이며 굵기는 5~10센치를 기르는 것으로 하며 사간<기운나무>와
품격높은 노송의 자태를 주로 그려 놓음으로써 그들은 먼 과거에도 명품의 조건까지 감지하여 기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중국 대도시 여러 곳에 분재 공원이 있고, 거대한 땅과 값싼 임금으로 엄청난 양의 분재를 생산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분재인이 일본등에서 기술을 배우고 있고, 그 기술로 중국 본토에서 생산한 분재를 세계에 진출하여 현재수출도 하고 있다.

여건으로 볼때 발전 가능성은 세계에서 높다고 볼 수 있다.

값싼 임금과 거대한 땅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 분재가 최근 세계와의 문을 열고 커다란 걸음으로 성큼 성큼 다가오는 것을 볼때 머지 않아서 세계 분재계에 태풍으로 다가와 휩쓸고 분재 종주국으로써 실력을 과시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분재소재 생산 업자들이 가장 주목 해야 할 대상국은 일본이 아닌 중국 이라 할 수 있다.
즉 처음 수출 할 때에는 값이 저렴 하겠지만 한국의 분재 생산이 약해지면 그때는 어떻게 나올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
한국의 분재
(세계2위)

한국의 분재는 거대한 땅과 인구가 있는 중국의 분재 문화를 배움으로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우리나라는 분재에 관한 기록된 자료는 적지만 고려중기 시대의 이인노1152~1220년의 <파한집>이 최초의 기록으로 되어 있다.

한국에도 그 이전부터 분재를 가꾸었을 가능성은 다분히 있겠지만 정확한 근거가 없어 기록으로서는 약 1,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 후 조선조 세조때 1460년 강희안의 양화소록과 (서기 1700년대에 홍만성의 <산림경제> 등이 있다.

- 이규보(1168~1241)선생이 고려 중기무렵 분재에관한 시와 문장을 기록한 (동국 이상국집)에 (분중육영)이라하여 사계화를 비롯하여 국화, 서상화(瑞祥花), 석류화, 죽, 석창포, 여섯 가지를 시로 읊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고려중기 최자 (서기 1188~1160년)는 분재에 관한 문장속에 분죽과 석창포에 관하여 집필하였
고 석창포는 수분 속 백사(白沙)에 심는것이 좋다고 기록 하였다.

이것을 보면 고려중기에는 대나무나 석창포를 가꾸어 즐기는 것이 꽤 보급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고려말 재상을 지낸 전록생 (서기 1318~1375년) 이 8세때 지은 시를보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 깊은 내용으로서, 시의 내용은 자연 수목에 대한 공감하는 감상의 멋을 느낄 수 있다.

<영분송>이라는 시집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산속에 석자높이 사시절 푸르름을

화분에 옮겼더니 또 한번 기득하네

바람은 속삭이듯 베갯머리에 와서 닿고

가지에 걸린 달은 창에 뜨기 더디어라.

힘들여 가꾸기에 새가지가 돋아나고

이슬, 비 흠뻑 젖어 잎 마저도 무성하네.

동량<마룻대와 들보를뜻함> 제목될지 두고봐야 알겠지만

서재에 마주보면 마음 통한다네.

하며 대자연을 그리워 하며 함께하는 기쁨을 글로 표현하여 분재에 데한 멋과 아름다움을 잘 표현된 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포은 정몽주는 분종송죽난매,라는시를 남겼는데 내용을 보면

(송)
<용처럼 서린 자태는 겨우 한 자 남짓 하지만 뜻이 크므로 구름을 헤치고 살아간다.
받들어 분에 심어 놓기는 비록 오늘 이지만 어여삐 어루만지기는 몇 해나 흘렀는가,
깊은 골짜기에 우뚝한 자태는 크게 굽혀져, 북쪽 창가의 서늘한 곳에 늘어져 있다.
진실로 범상한 물건 아닌 줄을 알아서 의자와 책상 곁에 더불어 함께 놓았다.>

라고 기록 되어 있어 참으로 한 그루의 명품의 노송을 곁에두고 바라 보는 듯한 시이다.

- 1337~1392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도자기에서 매화 분재의 그림을 볼 수 있고,

- 이종학 1361~1392도 분매시를 남겼으며,

- 1361~1392 에 40~66cm의 자수그림도 있다.

- 조선 초기 부제학을 지낸 강희안 1417~1464년에 저술된 <양화소록>에 분재와 화초를 가꾸는 방법을 깊이 있게 다루었으며 나무의 특징, 식제하는 방법은 물론 수형까지도 풀이 하였다.

또한 품종까지도 다양해지기 시작 하였고, 인제 강희안을 삼색(三色)이라 하여 일컬었으며 과거의 기록부터 자신이 가꾸던 기록까지 덧붙여 기록한 것을 볼 수 있다고 되어있다.

저서는 1460년대가 가장 오래된 것이며 1417~1461년>의 그림안에 그려진 분재가 사람의 키를 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1643~1715년에 본격적인 기록 도서가 발간이 되기 시작 하였음.

- 1653년 (승지회집도)가 있으며,

- 1700년초반에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가 있다.

- 1735년 도금이 있으며

- 1840년 임도16지가 있다.

이러한 기록은 역사 자료로서 한국 분재 업계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ㅇ 일본의 분재

- 현재 일본이 분재종주국의 위치를 차지하게된 과정 -

- 19세기말 러일전쟁 승리를 거두게된 것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분재 의 예술성에 관심이 고조되었으며(분재동호회 조직)

분재의 역사

- 명치시대말(20세기초)경기침체와 관동 대지진으로 분재가 크게 침체되었으나 국가적인 타결책 일환으로 동경동쪽에 분재마을 건립.

- 그와 함께 일본 유지들에의해 분재전시회가 개최되었으며, 그후 1950년 한국전쟁시 일본경제 부흥과 함께 분재 열성가들에 의해 다양한 분재 기술이 개발 보급되음.

- 현재에 이르러서는 일본어인 BONSAI가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연간 100억불의 수출을 하고 있음. 세계 2위인 한국은 일본의 10분지 1에 불과한 실정임.



>>> 한국 분재 역사를 아름답게 승화시키기 위하여...

- 겸허한 마음으로 연구 발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 옛말에 자업 자득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고 남을 힘들게 한다면 그런 사람은 더욱 힘들어지게 될 것이다.

반대로 서로 힘을 합하여 선행으로 간다면 틀림없이 좋은 결과가 있는 것이다.

- 현재의 분재원들이 유지 될 수 있도록 분재원과 국민적인 인식이 필요하기도 하다.

아울러

역사적인 기록을 남기기 위하여 실천 하는 마음을 직업인과 취미인이 함께 한다면 분재 문화의 발전은 잘 되리라 믿는다.


check 분재 키우기
제목
 1  2  3  4  5  Last

기본 배송지 설정

배송지명

배송지명을 입력해주세요

받는분

받는 분 이름을 입력해주세요

연락처

연락처를 입력해주세요
올바른 휴대폰번호를 입력해주세요

우편번호

우편번호 및 기본주소를 입력해주세요

주소

우편번호 및 기본주소를 입력해주세요

상세주소

상세주소를 입력해주세요

입력된 주소는 기본 배송지로 등록됩니다

등록완료